자가 격리가 시작되고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 되기 전까지 나는 밖으로 나가는 것에 무서움을 느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노출되는 두려움 보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날 노려보는 것이 더 무서웠다. 또,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왔다는 이야기에 미국 내 많은 도시에서 동양인 혐오 범죄들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 두려움은 커져만 갔다. 하지만 내가 경험했던 몇 주간의 혐오와 두려움은 미국 흑인들이 일상적인 것으로 평생 겪는다고 한다.
미국 현충일인 메모리얼 데이,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에서 46살 조지 플로이드는 백인 경찰에 목이 눌려 "숨을 쉴 수 없다"고 계속 호소했지만 숨졌다. 그는 흑인이었다. 경찰은 플로이드가 물리적으로 저항을 했다는데 CCTV 확인 결과 순순히 체호된 플로이드의 모습과 목이 눌려서 숨진 과잉 진압이었다는 것이 부검으로 밝혀졌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사회 시스템적인 인종 차별이 고질적으로 계속되는 것에 항의하는 시위가 사건이 발생한 미니애폴리스를 넘어서 미국 140개 도시로 빠르게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 사건을 접했을 때 내 마음은 복잡했다.
-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현재 미국에서 거주하며 일하는 동양계 여자'의 다양한 정체성 갈등
- 뭔가 얻는 것 (=돈)이 있기 때문에 여기 있는 것뿐이라는 그 어떤 비지니스(?)적인 관점에서 시작된 미국 사회에 대해 소속감 결여
- 미국에서 동양인은 마이너리티(minority)에도 종종 언급되지 않을 만큼 투명한 존재이다. 이런 투명한 내가 흑백 인종 차별에 내 감정과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 이득인 것을까 하는 산술적인 마음
보스턴도 동양인 비중이 높은 편이라 실감이 잘 안 나지만, 미국 전체로 보면 6% 로 추정된다. 흑인은 동양인들보다 두 배 많은 13% 정도이다. 2060년 동양인들은 미국 인구의 9% 가 될 것으로 미국 정부는 예측하고 있다. 지금부터 40년이 지나도 동양인은 여전히 몹시 낮은 비율이다.
이방인이자 동양인 여자로써 크게 목소리를 내는 것은 마냥 용감한 행동이 아니라 나 자신을 노출함으로써 취약해(vulnerable) 지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방관자가 되어 조용하게 사태를 숨죽이고 지켜보는 것을 택했다.
하지만, 만약, 이런 일이 한국에서 일어났다면 나는 가만히 있었을까?
아니다. 나는 인권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라며 적극적으로 밖으로 나가서 연대했을 것이다.
왜 인종 차별에 민감할까? 단순히 미국에 살고 있기 때문에 분위기에 휩쓸려 가는 것은 아닐까?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외국 생활을 했고,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나이지만 알게 모르게 인종 차별에 대한 느낌을 받은 적이 많았다. 그래서 한국에 살 때에도 "깜댕이" "살색" 같은 인종차별적인 단어들에 항상 민감하게 반응했고 적극적으로 수정을 요구했다.
미국은 내 인생의 1/3을 보내고 있는 곳이라는 것과 작년에 다양성 (diversity) 리더쉽 프로그램에 선발되어서 1년 동안 연수 받은 것도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답은 나왔다. 이방인이며 동양인이며 여자인 나는 미국 흑인들이 겪는 편견과 부당함을 평생 100%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함께 정의를 찾는 여정에 동참할 수 없다는 이유가 되지 못한다. 이 시위는 역사적인 순간이며, 여기서 얻게 될 정의는 단순히 흑인들 뿐만 아니라 모든 유색 인종, 이민자들, 여성, 성소수자들, 그리고 나아가 전세계적으로 오랫동안 영향을 미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MeToo 운동만 생각하더라도 그렇지 않은가?
현실을 냉정하게 말한다면, 동양인들은 흑인들이 겪는 차별의 대상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피부색으로 인간을 부당하게 대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취약한 사회 구조에서 이득을 볼 수도 없다. 동양인 내가 목소리를 내고 이들을 위해 일어나지 않는 것은, 나 스스로 고분고분하고 반항하지 않고 투명한 동양인에 대한 고정 관념을 더욱 굳히게 되는 것이다. 이게 과연 도움이 될까?
지금 이 순간, 내가 있는 곳에서 변화의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소셜 미디어 전체 공개를 통해서 가족, 친구, 지인, 직장 동료, 클라이언트 등등 연결된 모든 사람들에게 내 생각과 함께 두려움도 나누었다. #BlackoutTuesday #BlackLivesMatter #Asians4BlackLives
좀처럼 내 이야기를 하지 않은 프라이빗한 사람인 나에게 있어서 소셜 미디어 전체 공개를 한다는 것은 많은 용기가 필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받은 따뜻한 메시지들. 내 진심이 통한 것 같아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