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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의 일과 삶: 서울 한달살기 #32 (feat 신논현역 정돈 등심&안심 돈까스)

보스턴돌체씨 2020. 12. 29. 09:18

연말과 새해가 겹쳐있는 한 주가 시작되었다. 미국 돌아가는 날짜가 성큼 다가온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음식 리스트를 보면 좀 더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야할 것 같다. 

 

그 어떤 사리를 넣어도 다 맛있는 마법같은 부대찌개를 먹고 싶었던 날이다. 하지만 가고 싶었던 역삼동 대우식당에 가보니 문을 닫아서 (차로) 1분 거리에 있는 신논현역 수제 돈까스 전문점인 정돈으로 급선향했다. 

 

레스토랑 주차장이 있다고 해서 건물 근처에 주차가 가능한 줄 알았으나, 알고보니 인근의 작은 유료 주차장을 말한 것이었다. 그나마 유료 주차장도 빠르게 자리가 없어지니 가급적 대중교통으로 가는 것을 추천한다. 요즘 같은 시국에는 배달 또한 좋은 옵션일 듯하다. 

 

달빛보쌈처럼 깔끔한 표지판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레스토랑 정면에서 찍은 사진. 어두워서 잘 나오지 않았지만 은은한 쑥색 문도 마음에 든다. 

일본 유학 생활동안 할머니, 할아버지와 전철타고 긴자 미츠코시 구경하러 간 주말들이 있었다. 그런 주말 점심은 항상 할머니, 할아버지가 좋아하시던 한 돈까츠 집이었다. 아마 돈까츠를 좋아하게 된 것은 그 무렵부터인 것 같다. 

 

돈까스 집에 가면 등심과 안심을 두고 항상 고민하게 된다. 특히 그 돈까스 집이 처음이라면 더더욱. 

클래식한 등심을 먹어보고 비교를 할 것인가 아니면 촉촉하고 부드러운 안심을 먹으며 내 입과 배를 먼저 만족시킬 것인가. 

 

하지만 8년동안 미국 살면서 자연스럽게 먹는 양이 늘었기 때문에 정돈에서는 조금의 망설임 없이 등신&안심이 모두 나오는 1인 메뉴를 시켰다. 등심이 5조각, 안심이 4조각 나온다. 

돈까스만 클로즈업. 그냥 보기만 해도 '맛있음'이 뚝뚝 떨어져 나온다. 

추억을 이길 수 없는게 많이 없는데, 정돈의 돈까스는 정말 맛있었다.지난 10년간 먹었던 돈까스 중 가장 맛있었다. 기름 알레르기로 피부가 예민한데 9조각을 전부 먹고난 후에도 하나도 가렵지 않았던 것도 보너스 1점이다. 

 

돈까스 이외에도 정말 맛있었던 것은 바로 미소 된장국이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미소 된장국은 연하기 일쑤이다. 하지만 이 곳은 안에 건더기도 있고 진하게 풀어서 참 좋았다. 

 

미국 들어가기 전에 안심 돈까스 정식을 한 번 더 먹고 싶다. 


김교석의 <아무튼, 계속> 

 

지금까지 읽은 아무튼 시리즈 중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책이다. 책을 읽은 후에 저자를 만나보고 싶은 생각을 한 경우가 몇 번이나 있었을까? 하지만 김교석 작가가 지향하는 라이프 스타일은 비슷한 결이라 한 번 만나서 얘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일상의 항상성을 높이는 기술이 몇 가지 있다. 가능한 약속을 만들지 않고, 업무나 학업에 필요 이상의 욕심을 내지 않으며, 요일별 해야 할 집안일들, 예컨대 날씨가 좋은 주중 저녁에는 햇빛 건조가 필요 없는 수건을 빤다는 식의 루틴들을 매뉴얼화 하는 것이다. 모두, 평온한 일상을 위협하는 예외 상황을 최대한 억제하기 위한 방법들이다. 
  • 살면서 정신력을 강조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겠지만, 대부분 그릇된 가르침이다. 정신과 육체는 분리할 수 있는 이원적 개념이 아니다. 무엇보다 거꾸로 됐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일은 극히 드물지만, 체력이 떨어지면 정신력은 십중팔구 흔들린다. 
  • 균일한 일상을 중시하다 보니 옷차림도 최대한 변화를 느낄 수 없게 코디하기 때문이다. 주로 무채색 계열의 톤 온 톤으로 맞춰 입고, 아웃도어가 아닌 다음에야 브랜드가 겉면에 드러나는 옷은 절대로 입지 않는다. 절개가 들어간 디자인이나 튀는 패턴의 옷도 물론 고르지 않는다. 
  • 일상의 관성과 항상성은 별일 없이 사는 잔잔함에 매력이 있기 떄문이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약한 존재감은 늘 변함없이 사는 일상의 궁극이라고 할 수 있다. 
  • 항상성 높은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루틴이다. 자기만의 루틴을 마련한다는 것은 자신의 일상을 지키고 가꾸겠다는 다짐이다. 살다보면 생각보다 많은 유혹에 노출되고 휩쓸린다. 바빠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실연을 해서, 기분 좋은 일이 생겨서, 심지어 배고파서인 경우도 많다. 그런데 루틴은 일종의 일상 지킴이랄까, 온갖 사정과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빚어내는 예외의 유혹이 피어날 틈을 주지 않는 터프한 보안관이다. 
  • 별다른 능력이 없는 보통 사람들에게 허락된 단 하나의 재능, 그것은 바로 성실함이다. 일상의 루틴은 바로 이 성실함을 계발하고 극대화할 수 있는 삶의 태도이다. 루틴을 충실히 따르다 보면 성실함은 자연히 따라온다. 
  • 누구나 저마나 살림의 콘셉트가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체크인 한 호텔방'이다. 퇴근 후 돌아온 집이 체크인 한 호텔방처럼 아무런 생활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도록 노력한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기분 좋은 청량함을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공간 심리다. 
  • 결국 술자리나 모임이 없으면 일상 자체가 허전해진다는 점이 문제의 본질이다. 
  • 일상의 관성과 항상성을 따르는 삶은 남에게 검증받거나 보여주기 위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 일상이 소중한 것은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형성하는 순간들이기 때문이다. 
  • 식사 시간은 음식 맛을 느끼며 행복을 찾고, 잠시 쉬면서 복잡했떤 머릿속을 정리하고 비우기에 가장 적절한 시간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 순간마저도 자기 자신과 단둘이 마주 앉기를 거부한다. 이런 식이면 혼자 밥을 먹는 이유가 초라해진다. 
  • 아무렴, 어떤 짓을 해도 시간은 멈출 수가 없다. 그 속에서 우린 어떻게든 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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