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상자 /지구별 사파리

코로나 시대의 일과 삶: 서울 한달살기 #36 (feat 2021년 첫 날 떡국)

보스턴돌체씨 2021. 1. 1. 20:08

2021년 하얀 소의 해가 시작되었다. 

1월 1일 신정을 보내는데 올해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친척들이 모이지 않고 각자의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지난 8년동안 가족들과 명절을 보내지 못한 나로써는 조금 서운했지만 그래도 당연한 결정이다. 

 

새해 첫 날 차례를 지내지 않으니 새벽부터 모일 이유도 없어졌다. 느긋하게 찾아간 본가에서는 그동안 잘 먹지 못했던 한식 반찬들이 화려하게 세팅되어 있었다. 

 

흰살 생선전과 간장에 졸인 명란이 참 맛있었다.  

 

겉절이지만 양념이 심하지 않아서 샐러드 같았다. 이거야 말로 바로 한국식 샐러드 아니겠는가. 

 

드디어 떡국. 사실 미국 가기 전만 해도 떡국을 좋아하지 않아서 차례상에 올라갔던 나물들로 비빔밥만 먹었었다. 하지만 8년간의 타향살이하면서 입맛이 많이 변했다. 화려한 고명은 들어가지 않아도 깊은 육수로 만든 떡국이라 정말 맛있었다. 

 

떡국을 먹은 후에는 아주 간단한 세배도 하고, 곶감, 모찌, 샤인머스캣, 밤 등등 더 이상 들어갈 틈이 없을만큼 배에 음식을 꽉꽉 채워 넣었다. 나오기 전에 슬쩍 체중계에 올라갔더니 1주일 사이에 2 킬로그램이 늘었다. 역시 업무 시달림 없이 먹고 자고에 충실했더니 바로 삶의 윤택함이 도는구나. 

 

다음 주부터는 슬슬 이민 가방을 알아봐야겠다.


김먼지의 <책갈피의 기분> 은 궁금했던 (책) 편집자의 세계를 슬며시 엿볼 수 있게 해준다. 1일 1독할만큼 책을 좋아하지만 그게 업무가 되면서 책을 읽지 못했던 적이 없었다는 저자의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나도 그 기분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 저자와의 관계가 중요한 까닭은, 정말 좋은 콘텐츠를 가진 저자를 내 편으로 끌어오는 것 자체가 편집자의 '인맥' 즉 '능력'이 되는 구조 떄문이다. 
  • 종이와 활자 뒤에 숨어 아무리 고상한 척해도 결국 출판은 산업이요, 출판사는 사업이고, 책은 상품이다. 
  • 비록 지금 내가 이 모양 이 꼴이지만, 이 모양 이 꼴로 지금까지 잘 버텨왔다면, 잘 살아왔다면, 이것도 나름의 방식이 아니겠는가. 
  • 우리말은 참으로 실용적이며 유동적이다. 사용자의 편의에 맞추어 계속해서 발전하고 변화한다. 해마다 개정하는 것도 아니고, 무려 분기마다 맞춤법을 개정하고 있다. 
  • 저자의 삶으로 사르르 깃드는 느낌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유명인도 아니고 그저 타인에 불과한 사람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가 나는 너무 궁금했고, 너무 재미있었다. 신기했다. 마음이 넉넉해진 기분이 들었다. 
  • "이 책이 당장 큰돈은 벌어다주진 못하겠지만, 오랫동안 박사님만의 가치 있는 콘텐츠로 기억되게 해줄 것예요. 방송으로 소비되는 이미지의 수명은 아주 짧습니다. 하지만 책은 그렇지 않아요. 책은 먼 훗날에도 박사님이라는 사람을 기억하게 해줄 겁니다." 
  • 공중으로 둥실둥실 떠다니는 나만의 생각과 느낌을 정성껏 고른 언어로 만드는 작업. 이것이야말로 나를 정성껏 가꾸고 돌보는 시간,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 이래서 다들 글을 쓰는 걸까? 그렇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몸 밖으로 내보낼 줄 아는 사람 삶이란. 굳이 책을 내지 않는다고 해도 그 자체로 매우 근사하고 쓸모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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