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는 말이야 고터몰은 그냥 '지하상가'였어. 버스 타고 다니기 시작할 때야 되어서야 지하상가 위에 있는 건물들이 고속 터미널이라는 것을 알았지.
한가람 문구는 그 시절에도 있었는데 환경 미화에 쓸 용품들 사기 위해서 좁고 어수선한 지하상가를 걸어가면서 너무 무서워서 오가는 길 내내 엉엉 울었다. 퉁퉁 부은 눈으로 집에 돌아갔는데 그후에 담임 면담 시간마다 엄마가 얘기했는지 한 번도 방과 후 환경 미화 프로젝트에 동원되지 않았던 기억이 아직도 새록새록하다.
고등학생 때 옆 동네 남학교 축제, 수학 여행 때 입을 사복을 사기 위해 2-3번 가본 후로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지하상가는 발전을 거듭하고 이름도 낯선 고투몰이 되었다. 동대문처럼 보세 옷가게들이 즐비하지만 물건 디자인, 퀄리티가 더 낫고 디스플레이가 잘 되어 있어서 한국에 많이 와 본 중국/일본 여행객들이 쇼핑하러 오는 곳이 되었다. 항상 복작복작하던 곳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관광객이 다 사라지니 라떼에 봤던 모습이 되어 있었다.
보세 옷을 더 이상 사지 않는 내가 다시 고투몰 쇼핑을 가는 것은 세 가지 - 잠옷, 속옷, 양말 - 때문이다. 미국 가고 난 후에는 에어리(aerie)를 이용했는데 이번에 고투몰에서 급히 사온 것들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좀 더 사고 싶었다.
- 5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파는 마약 잠옷은 빨아도 줄어들거나 보풀이 일지 않고 입으면 놀랍도록 부드럽게 피부에 감겨서 이름처럼 입으면 벗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 메이드 인 차이나라고 크게 박혀 있어서 긴가민가 했던 속옷들도 에어리(aerie) 세일 때보다는 가격은 조금 비쌌지만 그만큼 더 마음에 들었다. 빨래 후 건조도 빠르고 가볍고 모양도 잘 살아있다.
- 양말은 어디서나 흔하게 구할 수 있지만 고터몰에는 10+1 프로모션도 있고 기모 양말, 덧버선 등 다양한 품목을 한 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어서 편리하다.
고투몰에서 가장 좋아하는 속옷/잠옷 가게. 퉁명스럽거나 과도하게 판매하려고 하는 다른 곳에 비해 차분하고 적절하게 친절하기 때문이다. 카드/현금 모두 가격 정찰제인 것도 마음에 든다.
이랑 <아무튼, 식물>
식물에 관한 에세이는 이걸로 2권째. 그런데 같은 작가인 것으로 봐서는 반려식물, 식물 키우는 유행이 시작되었을 즈음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했거나 포지셔닝을 잘 했던 모양이다. 모든 것은 타이밍이다.
- 이번 생은 한 번뿐이고 나의 결정들이 모여서 내 삶의 모양이 갖춰질 테다. 그러니 자라나지 않는 것들도 계속해서 키울 것이다. 거대하게 자라나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내 삶 속에 나와 함께 존재하면 된다.
- 열심히 돌봐도 식물이 죽고 또 죽으면 또 데려오면 된다. 언제나 더 풍부한 경험치를 가지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새로운 식물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고 최선을 다해 돌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