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서울 한달살기 두 번째 주말이다. 수능이 지나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더욱 확산되었다는 메시지에 웬지 모르게 한껏 움츠러들 수 밖에 없는 시간들로 나의 소중한 서울 한달살기가 채색되어 가고 있어서 아쉽다.
소고기가 너무 많은 미국이지만 웬지 육회는 한국에서만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다. 한 끼 한 끼가 다 소중한데 오늘 먹은 육회 비빔밥이 너무 별로라서 참 아쉽다. 육회 양이 적은 것은 둘째치고 냉동되었던 것이 나왔다는 것은 정말 너무한다. 사실 육회는 된장찌개처럼 매일 먹는 메뉴도 아닌데 차라리 가격을 올려서 제대로 된 한 상을 파는게 낫지 않을까?
선정릉역 4번 출구 근처에 위한 이조 한아름 갈비집에서는 갈비탕을 먹을 것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갈비탕은 큰 갈빗대 두 개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국물이 뚝배기에 먹음직스럽게 나왔다. 가격도 만 원으로 부담스럽지 않다.
탄수화물로 배를 가득 채우고 난 후에 소화 시킬 겸해서 최인아 책방 선릉점에 들렸다. 책을 구입할 수 있는 최인아 책방과 한 시간 단위로 이용료를 지불하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인 혼자의 서재가 같은 건물에 자리 잡고 있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규모가 꽤 컸고 빼곡하지만 여유가 느껴지도록 책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한 사람의 브랜드를 파는 독립 서점은 처음 가보는 것인데 그 사람의 취향을 알 수 있는 것이 흥미로웠다. 뿐만 아니라 주제별로 최인아 씨 지인들이 추천하는 책들을 큐레이팅한 것도 재미있었다.
최인아 책방에서 운영하는 북클럽에서 인기가 좋았던 책들만 모여있던 코너. 영어 번역서 이외에는 다 처음 보는 제목들이었다. 지난 8년동안 나는 한국에서 일어난 얼마나 크고 작은 변화를 모르고 지낸 것인가. 나고 자란 도시에서 한달살기 하면서 받은 낯선 느낌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오늘 읽은 책은 <아무튼, 메모>. 작가의 실제 메모 같은 중간 부분은 조금 지루했지만 그래도 메모할 수 있는 몇 구절이 있었다는 것으로 충분히 좋았던 책이다.
- 나는 재미, 이해관계, 돈이 독재적인 힘을 갖는 사회에서 살고 싶지 않아서, 우리 사이의 빈 공간을 아무렇게나 채우고 싶지 않아서, 아무렇게나 살고 싶지 않아서, 좋은 친구가 생기면 좋겠어서, 외롭기 싫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의 힘과 생각을 키우는 최초의 공간, 작은 세계, 메모장을 가지길 바라 마지 않는다.
- 메모도 책 읽기나 글쓰기처럼 자발적으로 선택한 진지한 즐거움, 놀이의 영토에 속한다. 이 세상에서 어떻게 영향을 받을까를 스스로 정하는데 왜 즐겁지 않겠는가?
- 혼자서 메모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우리는 사회적 존재이다. 메모는 재료다. 메모는 준비다. 삶을 위한 예열 과정이다. 언젠가는 그중 가장 좋은 것은 삶으로 부활해야 한다.
- 자기만의 작은 질서, 작은 실천, 작은 의식 (ritual)을 갖는 것이 행복이다. 메모는 '준비'하면서 살아가는 방식, 자신만의 천국을 알아가는 방식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