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간으로 아침 5시에 홀리데이 파티를 하고 잠들었다가 허겁지겁 일어나서 시작한 하루이다.
매년 다 어글리 스웨터를 했는데 설마 온라인으로도 할까 싶어서 아메리칸 이글에서 재미있는 크리스마스 모자를 준비했다. 나의 이런 준비성을 뿌듯해할 일이 생기길 바랬는데 어글리 스웨터 파티를 그대로 하겠다고 해서 신났던 기운이 좀 빠졌다.
아무리 늦게 잠들어도 아침 7시 30분에는 기상을 하는데 이상하게 서울에서의 시간은 손 안에 든 모래처럼 스르륵 사라진다. 돌아서면 오전 11시가 되어 있고 오후 3시가 되어 있다. 그동안 목말랐던 국문 책을 매일 한 권씩 읽기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재택 근무를 처음 시작했던 3월처럼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은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루틴이 잡혀 있지 않으니 순서가 뒤죽박죽 되어서 그런 것이겠지. 여행 온 것처럼 부유하는 상태를 즐길 것인지 루틴을 잡을 것인지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사회적 거리 2.5 단계가 되었는데도 씩씩하게 나를 찾아와 준 동생을 위해 노량진 형제상회에서 2인분 연어를 뺀 모듬회를 주문했다. 어플로 주문을 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 사이에 서비스가 종료되었는지 예전처럼 전화 주문을 해야했다.
전화번호: 02-816-8227
2인분 모듬회는 4만원, 6만원, 8만원으로 구분되어 있다. 양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퀄리티가 올라가는 것이라고 해서 가장 좋은 8만원으로 주문했다. 돈은 퀵 서비스 오는 분에 퀵비와 더불어 현금으로 지급하면 된다.
동생은 와사비(고추냉이)+ 간장, 나는 노량진 스타일로 초고추장에 찍어서 먹었다. 역시 회는 추울 때 먹는 것이 웬지 모르게 더 탱탱하고 맛있다.
한국 마카롱 열풍의 순기능 중 하나가 작은 개인 베이커리가 많이 생겼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비건 전문 베이커리를 생각보다 많이 찾아볼 수 있어서 반갑다.
원래 마음에 두었던 비건 베이커리가 크리스마스 케익으로 오프라인 매장을 열지 않는다고 해서 찾아간 삼성동 비건이삼이다.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은 듯 했는데 작은 실내 공간은 깔끔했고 정말 친절했다.
주소 및 길찾기:
비건 베이커리가 많아져서 한국에 있는 동안에더 우유와 버터가 들어가지 않은 빵을 계속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동생과 같이 먹기 위해 구입한 브라우니는 개당 4500원.
그 외에 찹쌀 타르트와 바닐라 빈 무스도 구입했다.
보름달이 그려진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고른 <온전히 나답게>는 적당히 신랄하고 적당히 궁상맞고 적당히 따뜻했다. 작가의 말처럼 너무나 솔직한 에세이 모음이라 영혼에 와닿았다고나 할까. 한수희 작가의 다른 책도 읽고 싶어졌다.
-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라는 고민과 두려움도 어차피 내일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면 부질없다. 그냥 현재에 충실하면 된다. 즐거우니까 하는 거고, 즐거운 만틈만 하면 된다.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며 후회 없이 살아가자. 미래 같은 건 운에 맡기자. 어차피 미래란 건 차곡차곡 쌓아올린 현재의 다른 이름일 테니 말이다.
- 어디서 왔을지도 모를 좋지 않은 재료에 조미료를 듬뿍 넣은 질 나쁜 외식과 몇 번 입다 싫증 나서 버릴 옷들, 불필요한 잡동사니에 돈을 쓰지 않으면 아름다운 것들에 쓸 돈이 생긴다. 남들 눈에 있어 보이는 것, 남들이 다 하고 다니니까 나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진정 원하는 것, 생활을 풍요롭게 해주는 작은 가치들에 돈을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 운동을 하면 사는 게 재밌어진다. 머릿속에 잔뜩 들어차 있던 걱정이나 고민거리들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몸을 움직이면 내가 살아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느끼게 된다.
- 빵을 만들면서 나는 세상 살아가는데 필요한 작고 단순한 자신감들 중 하나를 갖게 됐다. 내가 먹는 가장 기본적인 음식을 직접 만들 수 있다는 데서 오는 자신감이다. 그리고 이런 작은 자신감들이 모여 한 인간을 단단하게 만든다.
- 하찮은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인생이 된다는 것. 하찮아 보여도 그게 인생이라는 것. 그 하찮음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인생이 즐거워질 수도 비참해질 수도 있다는 것. 그런 것들을 나는 살아가면서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