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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의 일과 삶: 서울 한달살기 #30 (feat 서울아산병원 건강검진&오뚜기 그린가든 만두&선정릉역 용곱창)

보스턴돌체씨 2020. 12. 27. 14:38

수면 내시경을 받을 수 있게 된 후로는 종합 건강 검진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병원에 간다는 것 자체가 좀 두렵기는 했지만 미국에서는 하기 힘든 것이므로 그냥 진행했다.

 

출구를 통제하고 철저하게 병원 들어오는 사람들을 관리하고 있는 덕분에 아산병원 자체는 한산했다. 하지만 신관 4층의 건강 검진 센터는 (내 기준으로는) 사람이 많아서 얼른 끝내고 나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건강 검진하고 나면 주는 죽은 항상 참 맛있다. 덕분에 전복죽으로 든든하게 점심도 해결했다. 

 

수면 위내시경에 사용되었던 수면제가 강력했는지 집에 돌아온 후에도 내내 멍하게 있었다. 그러다가 냉동실에 넣어둔 오뚜기 그린가든 만두를 기억해냈다. 전자렌지를 이용해서 먹긴 했지만 보스턴에 있는 에어프라이기가 정말 그리웠다. 잠깐 돌려서 먹으면 정말 맛있을 것 같다. 

 

저녁은 선정릉역에 위치한 용곱창에서 1.5인분 혼자 먹는 소곱창 & 대창 (31,900원) 과 볶음밥 (3900원)을 쿠팡잇츠로 주문했다. 곱창& 대창은 이글거리는 불에서 익힌 다음 바로 먹어야 하는데, 위 내시경 후 목이 좀 아픈 것 같기도 하고 병원에서 몇 시간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냥 배달 주문했다. 이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한 음식들까지도 다 배달이 되는 것을 보니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어떻게 될까? 

 

좀 바삭하게 구워지긴 했지만 맛있었다. 함께 배달된 부추가 별미였다. 

이렇게 크리스마스 다음 날도 조용하게 흘러갔다. 다음 주말은 2021년인가? 


송은정의 <저는 이 정도가 좋아요>는 뒷 편의 한수희 추천사를 보고 읽기 시작했다. 최근 나온 비슷비슷한 에세이 중에서 한수희 작가의 글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는데 그런 분이 추천해준다면 읽어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하지만 내가 나라서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지점도 있다. 제아무리 높은 자존감을 타고난 사람이라도 '내적 파이팅'은 쉽게 바닥나기 마련이니까. 자가 동력만으로 에너지를 채우는 데 힘이 부친다. 
  • 나는 괜히 머쓱해졌다. 연민이나 안타까움은 아니었다. 우리에겐 저마다의 사정이 있고 각자의 선택을 사는 것이니까. 외출이 쉽지 않은 친구를 위해 종종 맛있는 조각 케이크를 사 들고 집에 놀러 가는 정도가 내게 허락된 오지랖일 테니까. 하지만 혼란스러웠다. 정말로 각자의 선택일 뿐일까. 아이를 갖지 않기로 선택한 나와 그렇지 않은 친구의 선택이 낳은 결과는 그저 각자의 몫으로 돌아가는 것일 뿐일까. 
  • 지금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것만이 미래의 내게 새로운 기회를 안겨주리라는 단순한 계산, 더하고 곱할 것도 없는 정직한 결론. 내가 예측할 수 있는 내일이란 딱 이 정도일 것이다. 
  • 세상의 크고 작은 규칙이 우리를 옭아매기 위해서가 아닌 보호를 위해 존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 지금과 달리 기꺼이 감수하던 시절이 있었따. 그떈 '좋아한다' '하고 싶다' 두 명제가 선택의 절대적 기준이었다. 다른 조건은 눈에 들어오지도 계산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것 하나를 얻으면 다른 열 가지는 잃어도 된다는 이상한 셈법이 머리속에 있었다. 
  • 세상이 나를 속인 것인지. 내가 나를 속인 것인지. 어쩌면 둘 다였을지도. 정당한 임금을 받지 못했다는 현실 너머에는 존중받지 못한 인간의 수치심이 자리했다. 
  • 결정을 어렵게 만다는 수많은 허들이 내 앞에 놓여 있다. 그 허들은 높이와 모양이 제각각이라 매번 다른 방식으로 대처할 수 밖에 없다. 나이, 성별, 결혼, 자존심, 능력, 재미, 명예 같은 것들. 때문에 모든 결정은 늘 새롭고, 나는 잔뜩 위축되어 있다. 
  • 과거의 나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가부장제 속 기혼 여성의 역할을 수긍하고 있었다. 언젠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게 된다면 그 책임은 자연히 내 것이 되리라는 예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피지 못했다. 그러니 만약 그 무지의 대가를 지금 제대로 통과하고 싶다. 여기 엄염히 존재하고, 실감하는 문제들을 왜곡하지 않고 정면으로 들여다보고 싶다. 
  •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다른 각도로 나의 궤적을 톱아볼 때면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지난 선택들이 그저 철없는 도피만은 아니었을 거라는, 내 삶을 어떻게든 책임져 보려는 발버둥이었을지도 모른다고. 
  • 그런데 칭찬을 비축해 놓는 곳간이 늘 풍요로운 것만은 아니어서 가급적 대비책을 준비해 두는 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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